효관산방 촟불아래 습작 詩 15

그들만의 난장(亂場)

그들만의 난장(亂場) 바가 오면, 매 마른 대지는 다시 초록의 싱그러움과 잔잔한 흙 내음으로 자연을 깨운다. 비가내린 그 길을 걷다보면, 맑은 생명체들의 수다스러움과 함께 촉촉한 대지위로 그동안 어둠속에서 습기와 유기분을 찾아 깊게 숨어있던 환형동물문인 빈모류들도 지하 굴에서 나와 충분한 대지의 습기를 만끽하며 자신들만의 난장을 펼친다. 비가 그치고, 대지가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하면 맑은 생명체들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는데, 그들의 난장은 앞으로 닥쳐올 위험에 대하여 무엇인가 망각한 들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된다. 그러나 마른 대지위에는 삶과 사의 기로에서 그들만의 환락으로 필연적 죽음을 선택한 그들은 난장의 결과로 곤충들의 먹이가 되고 그들은 대지의 사체로 여정을 마친다. 다시 대지에 비가 내리면 또 다..

무풍기성(無風起聲)

무풍기성(無風起聲) 부처는 자성(自性)을 깨쳐 만덕(萬德)을 갖추었고, 조사는 자성(自性)을 정견(正見)하여 해행(解行)이 서로 응(應)하였는데, 이 두 분이 세상에 출현하심은 무풍기랑(無風起浪)과 같고, 일물(一物)의 분상(粉狀)에서 본다면, 자성을 견성(見性)하지 못한 이 불자(佛子)! 세상에 나와 한 일이란 큰 울음소리로 바람 없는 허공에 부질없이 정적만 깨웠으니, 무풍기성(無風起聲)의 업(業)을 어찌 할고 좌선(坐禪)하며,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위해 또다시 나에게 길을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가정에 자비광명이 가득하시길 축원 드립니다“ 불기 2565년 5월 19일 曉觀山房에서 曉觀 최학수 合掌

어디서

어디서 어디서 내린 눈인지 저 눈 속 헤치며 붉은 매화는 피어날까 어디서 흘러온 잔설 녹은 물인지 저 물가 버드나무 버들개지 꽃을 피울까 어디서 불어온 바람인지 저 바람소리 머문 곳에 들꽃은 필까 어디서 몰려온 비구름 저 소나기소리 요란한 곳에 붉은 향은 피어날까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나그네 오늘하루 쉬어갈 곳 연못가 비친 달그림자에게 물어 보네 잠시 무엇인가를 잊은 듯 연한 미소로 2017년 봄 효관산방에서 인담 최학수

봄나들이

봄나들이 꽃 처녀, 꽃바구니 가득이고 고운 손 흔들며 “꽃 사세요” 하네 봄바람, 가슴가득 따뜻한 봄기운 안고 보일 듯 말 듯 앞 고름 살랑살랑 흔들며 “봄 향기 왔어요” 하네 새순 돋는 어린잎들도 옷깃사이로 수줍은 얼굴을 내밀고 “저도 있어요” 하며 부끄러움까지 전 하네 잔설 녹은 시냇물소리도 봄소식 전하는 봄 꽃길을 걷노라면, 봄 처녀, 봄바람, 청순한 어린 신록들이 오고가는 이에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하며 설레임을 주어 좋다 2021년 4월 12일 효관산방에서 인담

봄 오는 소리

봄 오는 소리 제주도 한라산 중턱 관음사에 봄 오는 소리가 요란하다. 어제는 밤사이 백발의 선사가 다녀가 아침 울력을 재촉하더니, 오늘 바람소리, 괴팍한 노스님의 호통소리인양 새벽잠을 깨운다. 일어나 토굴 문을 나서니 찬바람 옷깃 여미게 하고, 기울어 가는 달빛너머 초롱 한 별빛들이 못 다한 이야기를 건넨다. 아! 거친 바람에 대나무 숲이 신음한다. 그리고 별똥별이 긴 유성을 그리며 떨어진다.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자연 이치처럼 나도 생로병사(生老病死)의 흐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언젠가, 못 다한 꿈을 접으며 세월의 흐름만 한탄하려는 것은 아닌지? 더 늦기 전에, 고뇌와 관조의 시간을 갖고 자신과의 만남을 늘여야겠다! 봄이 오는 소리와 같이 속삭이면서... 2016년 3월 제주도 한라산 관음사 효관..

착월선후(捉月獮猴)

착월선후(捉月獮猴) 착월선후를 아십니까? 강물에 비추인 달을 건져 올리던 원숭이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강물로 뻗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건지면 흐트러져 버린 달을, 다시 둥그런 달이 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 손으로 한번, 다시 기다려 원형이 되면, 또 한 번, 밤을 새워 달빛 없을 때 까지 건지고, 또 건지고 아! 무지하고, 무모한 행동일지라도 건곤일척(乾坤一擲)하며 도전한다는 것은 안거위사(安居危思)하며, 눌언민행(訥言敏行)한 일입니다. 그리고 실천이 따르는 행동은 사석성호(射石成虎)합니다. 비록 그 뜻은 다를지라도... 2016년 6월 효관산방에서 인담 최학수 [참조] 건곤일척 : 천지를 두고 한판 내기를 하다. 모든 것을 걸고 승부를 겨루다. 안거위사 : 평안할 때 위험을 생각하다, 평화로울 때 위험..

토굴의 일상

토굴의 일상 새벽종소리가 천지만물을 깨우고, 멀리서 도량석 도는 스님의 목탁소리 청정해지면 자던 몸 일으켜 옷깃을 여미다가 아! 오늘은 하며 다시 모로 눕는다. 나무관세음보살! 밤사이 내린 비 처마 끝 낙수되어 똑 똑 똑 떨어지면, 떨어지는 낙수 물 소리와 함께 옷깃을 여미며 참선에 든다. 이뭐꼬! 사찰 내 울력소리 애써 나를 부르는데, 토굴에 누워 빈둥대는 나 무슨 염치인지 꼼짝을 안하네. 멀리서 스님 큰 기침소리에 화들짝 놀란 가슴 달래며 하! 또뭐꼬!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 곡차한잔에 발걸음 가벼운데, 사천왕문 들어서며 가볍게 두 손 모울 때, 누군가가 뒤에서 목덜미 짓누르고 등골 오싹해지면 숨 가쁘게 나도 모르게 주절대는 소리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3번) 2016년 9월 효관산방에서 인담..

세월(歲月)의 쉼터

세월(歲月)의 쉼터 성공하기 위해 달려온 시간들, 그리고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그 세상속의 어떤 성공을 꿈꾸며, 그저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시간들! 켜켜이 쌓인 세월의 무게만큼 그 결실, 하나씩 영글어 갈 때, 그리고 처마 끝 고드름 한 조각 봄 햇살에 산산이 부서져 나갈 때, 나의 육신은 조금씩 생주이멸(生住異滅)하고 고단한 세월의 강 건너, 나만의 쉼터를 찾아 떠나는 시간! 한그루 매화 가냘픈 나의 손끝에서 꽃이 피고, 이끼 낀 바위 위에 수묵화의 청조한 난향과 묵향이 풍기는 곳 마음의 창 열어 따뜻한 햇살 들이고, 술 한 잔 나누며, 우리를 이야기하는 세월의 쉼터 그곳에서 꽃향기, 바람소리, 그리고 맑은 물소리 들으며, 한운야학(閑雲野鶴)이나 할까나... 2019년 5월 曉觀山房에서..

내 마음의 고향(故鄕)

내 마음의 고향(故鄕) 소꿉친구가 있고, 골목대장 놀이하던 유년기 내 마음의 고향은 수백(粹白) 까까머리에 교복과 교련복에 숱한 사연이 있고, 야간자율학습과 도시락, 써클과 봉사활동, 여고 고적대의 짧은 치마 훔쳐보며 빵집을 찾던, 소년기 내 마음의 고향은 청운(靑雲) 고향 떠나 유학생활, 상아탑 그늘아래 철학과 이성을 이야기 하고, 쪽지에 사연 담아 팝송을 즐겨 들었던 노래다방의 추억, 그리고 만남을 통해 사랑을 나누었던, 청년기 내 마음의 고향은 인연(因緣) 첫 직장! 미래를 설계하기도 전에 무겁게 짓누르던 과중한 일상, 누런 월급봉투와 명세서 한줄, 한잔 술과 뽀얀 담배연기 속에서 오늘의 고뇌와 내일의 꿈을 이야기하던 청·장년기 내 마음의 고향은 청춘(靑春) 어느덧! 석양의 노을은 붉고 학발(鶴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