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단상

월요斷想[悟道頌]

효관 2022. 1. 9. 19:28

월요斷想[悟道頌]

 

무산스님은 승려, 걸인, 때로는 은둔자로 중생과 더불어 천하를 두루 섭렵하고 시공을 초월했던 위대한 무애자들, 입으로만 전해지던 그들의 발자취와 깨침의 법음(法音/설법을 하거나 경전을 읽을 때 나는 소리)을 모은 선사들의 오도송(김영사, 2003. 05. 30)을 출간하셨습니다.

1943년 경주에서 출생하여, 13세에 백운산 백운암에서 구월산 선문의 법장(法藏)선사에게 출가한 후 여러 훌륭한 스승 아래서 수행 정진하셨습니다.

미국 시카고 주립대학에서 6년간 동양사학을 강의하기도 한 무산스님은 중국과 일본 선사들의 공안과 오도송이 우리 선원의 청규(淸規/선종의 사원에서, 스님이 늘 지켜야 할 규칙)로 여겨지는 현실을 보고, 20여 년간 우리나라 고서들과 선종사를 탐독하여, 그 결과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천여 년 불교사를 빛낸 선사들의 오도송 70여 편을 발굴하고 해석하는 큰 불사(佛事)를 이루었습니다

 

오도송[悟道頌]

오도송의 '오도(悟道)'라는 의미는 깨달음()을 이루었다는 말이다.

깨달음에는 확연대오(廓然大悟), 확철대오(廓撤大悟), 활연대오(豁然大悟)가 있습니다.

활연대오란 수행 정진하는 가운데 삼매(三昧/잡념을 버리고 한 가지 대상에만 집중하는 경지)에 들어 있을 때 그 어떠한 대상물을 보는 순간 막힌 것이 환하게 열리면서 깨치는 것을 말합니다.

확연대오란 수행하는 가운데 자연의 영위하는 법칙을 보고 순간적으로 깨우치는 것이고, 확철대오는 수행하는 가운데 쌓였던 번뇌와 그 어떠한 생각도 자각도 사라지고 캄캄한 상태에서 환하게 빛을 발하면서 순간적으로 깨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말이나 글로써 완전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여, 마치 땅속 깊숙이 감춰져 있는 불덩이를 땅 바깥으로 끄집어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활연대오의 대표적 오도송은 화정국사(원효)의 깨달음입니다.

知心生故種法生(지심생고종법생/마음이 생기면 만물의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心滅故觸髏不二(심멸고촉루불이/마음이 멸하면 무덤, 해골 물이 둘이 아님을 깨달았구나)

확연대오의 대표적 오도송은 무염국사 오도송인 一心無碍(일심무애)입니다.

筏師旣捨矣(벙발기사의/큰 배를 이미 버렸거늘)

舟子何繫焉(주자하계언/어찌 작은 배에 매여 있으리요)

확철대오의 대표적 오도송은 백운선사의 선관(禪觀)입니다.

黃面瞿曇不良久(황면구담불량구/금빛 얼굴의 부처님은 유구 세월없나니)

室中維摩亦不黙(실중유마불묵/방장실의 유마힐도 침묵하지 않도다)

恰似吹毛新發硏(흡사취모신발연/선의 본바탕은 새로이 연마한 취모리(번개같이 빠름) 검과 같으니)

外道天魔處不得(외도천마처불득/외도와 천마도 넘보지 못하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오도송의 의미와 자연 이치의 깨달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산스님은 오도송이란 마음속 깊숙이 내재해 있는 심지 본연의 심실인 청정무구한 마음의 씨, 그 씨 속의 씨앗을 마음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역대 선승들의 수행 정진과 깨달음에 의해 면면히 이어져 온 우리의 고유한 선맥은 천여 년 역사와 전통 속에서 민족의 정신세계를 밝혀 왔습니다.

많은 중생과 모든 생명체의 마음에 법의 깨우침과 선사들의 삶과 가르침은 시간과 공간의 벽을 뛰어넘어 영원한 구도의 길 즉, 일심(一心)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원효는 일심의 경지를 청운(靑雲)과 대해(大海)에 비유하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봉황이 청운 위를 날아가면서 산악의 비천함을 알게 되고, 하백(河伯)이 대해를 굽어보며 산하의 협소함을 부끄러이 여기듯이, 도를 이루고자 하는 자가 일심의 세계에 들어가면 비로소 앞서 배웠던 모든 학문이 치졸함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중생의 마음에서 선사와 같이 깨달음() 경지에는 이루지 못하였지만, 우리의 생활 속에서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보호·실천하는 마음이 곧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든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종교에의 귀의 본성을 스스로 회복·발전하는 과정을 통해 일심(一心)이란 마음의 근원을 찾는 그런 한주이길 바랍니다.

 

069/20220110

曉觀山房에서

仁潭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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