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斷想[雪中歸驢]
옛날부터 술은 ‘以酒助興(이주조흥), 以酒壯行(이주장행), 借酒賦詩(차주부시), 借酒抒懷(차주서회), 借酒消愁(차주소수)’라고 했습니다. 즉, ‘술로 흥을 북돋을 수 있고, 술로 장도를 축하하며, 술의 힘을 빌려서 시를 짓고, 회포를 풀며, 근심을 없앤다’는 뜻입니다.
선현(先賢)들은 술을 마시고 오히려 정신적인 고도의 세계에 들어가 시조(時調)를 읊고, 서예(書藝)와 수묵화(水墨畵)를 즐기기도 하였습니다.
역대 왕후장상(王侯將相), 영웅호걸(英雄豪傑), 문인묵객(文人墨客) 등이 술을 좋아했고, 「귀거래사(歸去來辭)」로 유명한 도연명(陶淵明)을 비롯하여, 이백(李白)은 주선(酒仙), 두보(杜甫)는 주호(酒豪), 왕유(王維)는 시불(詩佛), 이하(李賀)는 시귀(詩鬼)라는 존칭(尊稱)이 있을 정도로 애주가였기에, 술과 관련된 한시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설중귀려[雪中歸驢]
미술 칼럼니스트 손철주 지음 『그림 아는 만큼 보이다』 1부 「작가이야기」에는 조선시대 열흘을 굶다 그림 한 폭 팔아 술을 사 마신 날 겨울, 성곽의 삼장설(三丈雪)에 쓰러져 죽은 최북(崔北)이야기와 자신이 그린 그림에서 조차 술 냄새가 풀풀 나는 화가였다는 화인 김명국의 이야기가 호탕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최북은 이름의 북(北)을 반으로 쪼개 자(字)를 칠칠(七七)이라 했고, 호는 붓(毫) 하나로 먹고사는(生) 사람이란 뜻으로 호생관(毫生館)으로 불렀는데, 그의 대표작품이 설중귀려(雪中歸驢), 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 등이 있습니다.
최북은 ‘미치광이 화가’로도 유명한데, 자신의 미친 짓은 “지독하게 말짱한 세상 때문”이라는 최북의 주량은 하루에 막걸리 대여섯 되로 언제나 취해 비틀거렸으며, 어느 세도가가 그의 붓 솜씨를 트집 잡자 “네까짓 놈의 욕을 들을 바에야”하며 제 손으로 한쪽 눈을 찔러버렸다고 합니다.
산수화를 잘 그려 ‘최산수(崔山水)’로 불렸던 최북은 설경을 많이 그렸는데, 그의 이름인 북(北)은 오행에서 계절로는 겨울을 뜻하기도 합니다.
조선 인조 때의 화원 김명국은 연꽃 향기 나는 ‘연담(蓮潭)’이란 호를 나두고, 말년에는 ‘취옹(醉翁)’이라 자처했을 정도로 술독을 끼지 않고서는 먹을 갈지 않았으며, 취흥 없이는 붓을 잡지 않았다는 주호(酒豪)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 대하여 “마치 태어나면서 아는 듯(生知) 배워서 될 일이 아닌(不可學) 그림들”이라고 평가와 함께, “꽃잎이 허공을 날리듯 용이 바다에서 춤추는 듯한 화가”로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손철주님은 저서를 통하여 어느 날 발작을 일으켜 한쪽 귀를 자른, 그리고 오렌지색과 자주색, 불타는 진노란색과 아찔한 녹색으로 사람의 넋을 흔든 「빈센트 반 고흐」는 알면서, 조선시대 담홍색과 청색, 그리고 짙고 옅은 먹색의 꾸밈없는 붓놀림으로 한쪽 눈을 제 손으로 찔러버린 「최북」은 왜 모르냐는 한탄과 함께, 세월의 칼질을 버티는 작가의 미스터리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술(酒)’은 어떤 의미입니까?
하기야 ‘수풀 속의 꽁은 개가 내쫒고, 폐부(肺腑)속의 말은 술(酒)이 내 몬다’는 말대로 술은 어떤 때는 솔직하게 만들고, 어떤 때는 최북과 같이 미치광이를 흉내 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비록 언택트 환경이지만, 술잔을 부딪치며 우리의 고뇌를 이야기하고, 흥청 되던 밤일지라도 오래 묵은 사람 냄새가 있는 친교의 밤이, 그 술자리가 그리운 그런 시간입니다.
어느 작가의 글처럼 ‘밤과 술 사이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있다’고 합니다.
이번 주는 가족과 친우, 좋아하는 사람과의 만남과 술 사이(間)를 생각해보는 그런 한주였으면 합니다.
2021년 03월 29일
曉觀山房에서
仁潭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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