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斷想[新羅 金冠의 秘密]
월요斷想[新羅 金冠의 秘密]
옥스퍼드대학교 대학원 고고학 박사로 현 고려문화재연구원 김병모 원장께서 30여 년에 걸친 현장답사와 고증, 그리고 역사적 상상력으로 금관의 상징성을 파헤치며, 김씨의 원류와 신라 왕릉의 주인공 등 한국 고대사의 변화를 밝힌 『금관의 비밀, 한국 고대사와 김씨(金氏)의 원류를 찾아서』(도서출판사 푸른역사, 1998)를 발간하였다.
1500여 년 전 한반도에 갑자기 등장한, 한국 문화재 중에서 최고의 국보급 유물이자,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신라 금관을 통하여 금관의 발견사, 구성 요소 등 금관의 세계와 통치계급의 종족적 원류, 그들의 사유세계(思惟世界), 미적 감각 등을 설명해 주고 있어 소중한 자료로 소장하고 있습니다.
『신라 금관의 비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조각 미술품(彫刻美術品) 중에 사유보살상(思惟菩薩像)은 해탈하기 전의 석가모니, 즉 싯타르타 왕자의 고뇌하는 듯한 표정으로 보관(寶冠)을 쓰고 있습니다.
즉, 관을 쓰는 행위는 선민(選民)이라는 표시이며, 보통 사람과 다르게 정치·사회적으로 비범한 인물이라는 증거로 관이 사용되었고, 위세품(威勢品) 또는 장엄구(莊嚴具) 중에서 으뜸가는 것이었습니다.
1921년 경주 금관총(金冠塚)에서 최초로 발견된 금관은 그때까지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식과 화려함, 뜻 모를 모양, 백여 개의 금엽(金葉/생황 따위의 대롱 아래쪽 끝에 붙여 떨어 울리게 하는 서)과 곡옥(曲玉/반달 모양으로 구부러진 모양의 구슬)의 찬란함에 눈이 부셨을 것입니다.
1973년 경주 천마총(天馬塚)의 발굴은 여러 개의 관모(冠帽)와 순금으로 만든 허리띠, 천마도(天馬圖) 등은 신라의 역사와 고미술에 관한 관심을 배가시켰습니다.
일반적으로 무덤의 주인공이 분명하게 밝혀지면 ‘릉(陵)’이나 ‘묘(墓)’라 이름 붙이고, 주인공이 불분명할 때는 ‘총(塚)’이라 합니다.
그러나 신라의 왕 중에 ‘천마도’라는 이름을 가진 왕은 없으므로 이 고분에서 발견된 백화수피(白樺樹皮/자작나무 껍질)에 그려진 천마도 때문에 천마총(天馬塚)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금관에는 직각수지형(直角樹枝形)금관과 자연수지형(自然樹枝形)금관으로 구분 지울 수 있습니다.
직각수지형금관의 수엽(樹葉), 곡옥은 나무 열매의 상징으로 씨(種)를 품고 있어서, 후손의 대를 이어 왕이나 사제(司祭)의 직위를 이어간 사람의 위세품에 달린 장식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자연수지형금관은 입식의 가지는 3단(段)이 일반형인데, 1단은 어느 가계(家系)의 대(代)수를 의미하고 있어, 3단은 3대를 걸쳐 왕이나 사제를 이어간 주인공을 나타냅니다.
금관 속의 나무(木)와 새(鳥), 사슴뿔(鹿角)은 금관을 사용하던 사람들의 어떤 정신세계를 상징하고 있으며, 곡옥(曲玉)은 반달 모양, 맹수의 송곳니(犬齒)라는 해석과 함께, 가슴과 등에 새끼가 달린 형상을 한 모자곡옥(母子曲玉)이 다수 발견되면서, 동물의 태아, 즉 생명을 상징한다는 해석으로 수렴되었습니다.
또한, 과실(果實)은 생명(代)을 이어가는 씨앗(種)을 품고 있으므로 생명의 탄생과 자손의 번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라 금관에 달려있던 많은 곡옥들도 금관을 쓰던 신라 왕족의 생명, 곧 탄생·죽음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하겠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전통문화 계승과 주요 문화유산인 ‘금관’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1997년 한국의 금관은 대영박물관 전시를 통해서 한국 전통 문화제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습니다.
사회가 확대되면, 국가를 통치하는 집단에게는 당연히 신분에 걸맞은 위세품이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그러한 위세품 중에는 모자나 관이 으뜸가는 장엄구였는데, 이번 주는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인 ‘금관’에 대하여 짧은 지면, 즉 월요斷想을 통한 「신라 금관의 비밀」 이해가 아닌, 학습과 박물관 견학 등 현장 방문을 통해 우리나라의 ‘금관의 비밀’ 등을 이해하는 그런 한주였으면 합니다.
099회/2022년 08월 08일
曉觀山房에서
仁潭合掌